본문 바로가기
이슈 산책

쿠팡맨. 자신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by 스젯 2015. 8. 15.

 

 

 

요즘 쿠팡맨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업계 내에서는 물론이고 배송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 사이에서 화제다. 배송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쿠팡맨 시스템. 화제가 되고 있는 만큼 왈가왈부 말도 많다.

 

배송업계에서는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배송을 하는 차량에 영업용 번호판을 달지 않는다 등의 논점을 제기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야기이고 실상은 자신들의 밥그릇이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오픈마켓이 팔고 배송업체가 배송해서 둘이 같이 수익을 냈는데, 만약 쿠팡맨 시스템이 정착된다면 오픈마켓회사가 팔고 배송까지 해버리기 때문에 배송회사 입장에서는 그 부분만큼 수익이 감소하는 것이 탐탁치 않은 것이다.

 

현재 업계에서는 비용절감을 위해 배송 서비스를 대개 외주에 맡기는 추세다. 그로 인해 최근 배송 회사들이 상당한 성장을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발주업체가 자기들이 직접 배송을 하겠다고 하니 당황스러울 만도 하다. 하지만 쿠팡에서는 아웃소싱을 통한 비용절감보다는 고객만족을 통한 수익증대 효과가 더 클 것으로 판단하고 내린 결정이니 누가 뭐라고 할 일은 아니다.

 

어쨌든, 고객들은 대개 만족하는 표정이다. 기존의 택배기사는 급하게 물건을 전달하고 바쁘게 사라졌던 반면, 고객만족에 대한 집념으로 똘똘 뭉친 쿠팡맨은 그동안 볼 수 없던 행동패턴을 보이고 뜻밖의 서비스를 제공하니 고객입장에서는 그게 놀랍고 기쁜 모양이다.

 

 

 

    

  부재중 문앞 배송시 쿠팡맨들은 반드시 이 구도의 사진을 고객에게 보낸다. (좌)

고객에게 쿠팡맨이 보내온 문자. 배송기사마다 자기만의 정형화된 멘트가 있는 듯 하다. (우)

 

 

 

쿠팡맨은 배송 전 방문전화는 당연하고 고객의 요구에 따라 적접배송, 경비실 보관, 문앞배송, 재방문 등의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게다가 배송시 기사 나름의 선물이 제공되는 경우도 있다. 초콜릿 같은 다과류나, 손수 그린 그림, 혹은 그외 재주가 있는 기사들은 각각 특색있는 선물을 제공한다.기존 택배기사들로부터는 기대조차 할 수 없었던 서비스에 첫 고객들은 신선함을 느낀다.

 

 

  쿠팡맨이 놓고간 사탕풍선 선물. 그밖에 그림 선물을 하는 쿠팡맨도있다. 

 

 

 

쿠팡맨은 왜 다를까?

 

 

“행복을 전해드리는 쿠팡입니다.“ 

이게 쿠팡맨이 하는 인삿말이다. 단순히 물건을 전달하는 배송기사가 아니라, 상품과 함께 행복을 가져다주는 쿠팡맨. 이것이 쿠팡이 배송기사들에게 교육시키고 요구하는 직업 의식이다.

 

몸으로 일하는 배송기사는 사실 굉장히 힘들다. 적성에 맞아서 택배배송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개 살기 위해서 택하는 직업이 택배일이다. 헌데 쿠팡에서는 그런 택배기사에게 고객을 웃게하고 행복하게 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인터넷에 올라오는 쿠팡맨 후기들은 그들이 진짜로 그일을 해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고단한 배송기사가 어떻게 스스로 행복해지고 고객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회사는 어떤 식으로 그들에게 열정을 불어넣어 동기를 부여할까?

 

이와 비슷한 사례는 이미 존재한다. 꿈과 환상의 세계, 디즈니랜드가 바로 그 곳이다.

“우리가 파는 것은 행복이다.“

디즈니랜드 창립자 월트 디즈니가 남긴 말이다. 월트 디즈니는 신기한 놀이기구나 안락한 장소나 맛있는 먹을 거리가 아니라, 행복을 파는 것을 기업 이념으로 삼았다.

 

그 기업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 디즈니랜드에서 일하는 직원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행복은 전염되는 것이기에 일하는 직원이 행복해야 방문객 역시 행복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 이념을 디즈니랜드의 고객 접점에서 실현하는 사람들이 바로 청소부다.

 

 

▲ 고객을 위해 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디즈니랜드 청소부. 디즈니랜드 청소부에게 이정도는 기본?

 

 

 

 

디즈니랜드는 청소부에게 '당신은 청소부이니 청소를 깨끗이 해야합니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당신은 고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배우 입니다.' 라고 교육시킨다. 새로운 사고로 무장한 이들은 보통의 청소부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그 모습에 감명받은 고객들은 청소부를 칭찬한다. 그리고 그 칭찬이 다시 청소부들의 동기를 강화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쿠팡에서 쿠팡맨의 모습이 이와 비슷하다. 배송기사를 쿠팡맨이라 부르고, '배송기사이니 신속정확하게 배송을 하세요.'라고 교육하지 않고 '고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쿠팡맨이 되세요.'라고 교육시킨다. 이것이 쿠팡맨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신선한 모습들의 원동력일 것이다.

 

 

 

하지만 마법은 사라지기 마련.

 

 

 

하지만 이미 언급했듯 배송업무는 매우 힘든 일이다. 하루 종일 운전을 하면서, 짐을 들어 나르면서, 고객을 상대해야 한다. 제 시간에 배송을 마치려면 밥도 제때 먹기 힘들다. 거기에다가 쿠팡맨은 고객을 행복하게 해주는 서비스까지 해야 한다.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직업인 셈이다.

 

실제로 단순 배송 업무를 수행하는 줄 알고 쿠팡맨에 지원했다가 쿠팡에서 요구하는 업무 기준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기 퇴사하는 이들의 수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짧은 기간은 누구나 연기를 해서라도 '행복전도사'가 될 수 있겠지만, 그걸 1년 2년 해내려면 굉장한 지구력과 스트레스 내성이 필요하다.

 

쿠팡에서도 자신들이 원하는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을 알기에 쿠팡맨 채용시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고 총 3회의 6개월 근로계약을 통해 18개월간 배송기사를 평가하여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자격에 미달할 경우 18개월 후 계약을 종료시키고 있다. 

 

일을 하는 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하여 적어도 일하는 동안에는 행복할 수 있도록하는 것은 굉장히 바람직하고 훌륭한 경영방법이다. 하지만 살짝 비틀어 생각해보면, 회사가 직원에게 부여해주는 동기만큼 직원의 인생을 책임지고 보상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세뇌를 이용해 사람을 장기말로 이용해먹는 형국이 될 수도 있다. 

 

디즈니랜드에서 일하는 청소부들은 주말에도 휴일에도 일한다. 야간청소를 맡은 이들은 놀이기구 세척 작업을 위해 새벽 3시까지 일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일을 매우 행복하게 해낸다. 왜냐면 자기는 청소부가 아니라 '배우'니까. 그렇게 디즈니랜드의 마법은 청소부들에게 열정을 불어넣어 행복한 상태로 일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마법은 영원하지 않다. 

 

 

 

"Working for Disneyland is great, for the first year or two if you're young. I wouldn't really suggest working there for several years because the "magic" starts to eventually wear off."

발해석 : 디즈니랜드에서 일하는 것은 끝내준다. 당신이 젊고, 1년 내지 2년 동안이라면 말이다. 나는 디즈니랜드에서 수년간 일할 것을 권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마법'은 결국 사그라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 구직사이트 indeed.com 에 올라온 디즈니랜드 근무 경험자의 평가

 

 

 

실제 디즈니랜드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이직이 매우 잦다. 일을 했던 이들은 모두 디즈니랜드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고 훌륭한 경험이었다고 말하지만, 대개 그들의 근무 기간은 수개월에서 일년이다. 열정이 지속된다면 계속 마법에 취해 일할 수 있겠지만, 그 열정을 지속시키기란 쉽지 않음을 반증하는 셈이다. 쿠팡맨의 모습은 디즈니랜드 청소부와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다. 그점이 그들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되는 이유다.

 

 

 

문제는 또 있다. 고객들이 언젠가는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과거 삼성전자가 고객서비스를 강화하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 초반까지가 절정기였다. 당시 삼성전자는 고객만족이 아닌 '고객감동'을 실현하고자 했다. 대대적인 서비스기사 인력 확충, CS교육, 해피콜이라 불리는 고객평가 시스템을 도입해서 서비스 기사에게 열정을 불어넣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삼성전자의 의도대로 고객들은 '감동'했고, 브랜드 이미지가 굉장히 높아졌다. 서비스는 역시 삼성이라는 말도 그 당시 생겨났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10여년이 흐른 지금, 당시의 그 효과는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과도하게 베풀어진 친절에 처음에는 감동하던 고객들이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친절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상으로 서비스 해주지 않으면 센터에 가서 소리지르면 다 해준다는 말이 나오고, 이 고객감동 서비스 덕분에 진상고객들이 실제로 엄청나게 늘어났다. 삼성전자는 다시 고객감동보다 비용절감을 택했고 서비스센터를 외주화하기 시작했다. 2015년 현재 삼성전자의 서비스 센터 90% 이상이 직영이 아닌 협력업체(개인사업자)다.

 

쿠팡맨 시스템 역시 이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쿠팡맨들이 제공하는 이벤트와 서비스는 갈수록 정형화 되고 예상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초반에는 뜻밖의 선물로 고객들의 호기심을 끌어내고 호감을 얻어내 기업 이미지가 올라가겠지만, 어느 선에 다다르면 더이상 그 효과가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쿠팡맨 시스템의 존속 조차 불투명해질지도 모른다.

 

혹시 삼성전자가 그러했듯, 쿠팡이 백중세인 시장에서 새로운 서비스로 경쟁우위를 점하기 위한 묘수로 잠시 쿠팡맨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회사입장에서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그런데 진짜 그렇게 된다면, 쿠팡의 마법에 걸렸던 쿠팡맨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쿠팡맨들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까?

 

 

 

쿠팡이 쿠팡맨을 장기말로 이용해먹을 요량이 아니라면, 그들이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선은 회사가 명확한 비젼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2015년 현재 약 1000여명의 쿠팡맨 가운데 올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수는 50여명에 불과하다. 그외는 모두 6개월 단위 계약직이다. 정규직 비율을 보다 높여서 구직자들이 희망고문에 속아 시간낭비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장기근로시의 혜택을 강화해야 한다. 쿠팡맨은 급여만 보면 배송업계에서 상위급의 대우를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장기근로자에 대한 혜택을 보장(승진, 급여)하지 않는 이상 쿠팡맨은 젊은 시절 한두 해 하고 말아야 하는 일자리가 될 것이다.

 

업무부담을 줄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높은 수준의 고객서비스를 수행해야하는 것이 쿠팡맨의 목적인 만큼 육제노동의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 일인당 야간 배송, 주말 배송 횟수를 줄여주기 위해 일반 배송업체에서 유지하는 물량 당 적정인력 대비 1.5배 수 이상의 인력과 보조 인력을 채용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배송기사 스스로가 자기의 모습을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열정적이고 행복하게 일해야 한다. 하지만 그 동기가 쿠팡맨이라는 '마법'에 의한 것 이어서는 곤란하다. 단순히 회사가 시행하는 교육과 평가 그리고 고객의 칭찬 등에 의해 외적으로 동기화되지 말고, 스스로가 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그려놓고, 자기가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임을 인지하며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냉정한 말일 수 있지만 쿠팡맨은 어디까지나 배송기사다. 간혹 고객서비스와 마케팅에 엄청난 재능을 보이는 사람이라면 관리자 직급으로 승진하거나, CS강사가 되는 등의 새로운 진로를 걸을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배송기사로 남게 된다. 그 현실을 직시한 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준비를 한 후에 일에 임하는 것이 쿠팡맨의 '마법'에 걸려 재미있게 일하고 난 뒤에 마법이 풀리더라도 후회를 남기지 않는 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