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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대한민국에 살면서 스스로 사는 곳을 지옥이라 부른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에 살아가며 이곳을 벗어나길 '꿈'꾼다. 행동하지 않고 꿈만 꾼다. 뭐 이런 모순이 있고 자기비하이며 자학행위가 있을까. 하지만 나는 헬조선을 외치는 이들을 애국자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일반적인 애국자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그 속내의 기본은 나라를 아끼고 나라로 부터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속시원하게 '까주는' 헬조선주의자
그들은 한국의 갖가지 비리, 부정, 비합리를 파헤치고 공유한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특히 한국 국민은 그 망각이 더욱 심하다. (내가 이 나라에 살고 있고 다른 나라의 사정은 잘모르기에 주관적인 인식이 작용해 그리 느끼는 탓이겠지만 말이다.) 교육, 사회, 문화적인 배경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하지만 헬조선을 외치는 이들은 그 망각의 속도에 제동을 건다. 헬조선이 헬조선임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슈들을 꺼내고 재생산하고 재배포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헬조선이라는 개념을 접하지 않았던 네티즌들도 건너건너 특정 이슈에 대한 비난과 비판의 소리를 듣고 그 사건을 다시 회상한다.
'헬조선주의자' 들은 대개 급진적 성향을 가진 사회 비주류 세력이다. 그들이 비난하는 타겟은 한국의 사회 시스템 그 자체, 혹은 주류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보수층이다. 아마 그 비난과 비판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들은 불쾌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세상을 '까는' 사람들이 해온 역할
사회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자신들의 주장을 표출하고 구체화시키고 행동하던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 중 과격하고 즉시적인 변화를 열망하는 이들을 급진주의자 혹은 급진파라고 불렀다. 프랑스 대혁명의 주도 세력이나 조선 개국의 역성혁명을 주도한 정도전 일파가 쉽게 떠오르는 예가 되겠다.
급진파의 주장은 고착된 사회질서를 흔들고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때문에 안정된 사회에서라면 그들의 의견은 그저 묵살된다. 하지만 안정되지 못한 사회, 구성원들의 불만족이 어느 수준을 넘어선 사회에서는 급진파의 의견이 '먹힌다.' 말하자면 밥상을 엎어버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급진파는 그런 여론을 모으고 세력을 규합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존 질서와 투쟁해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어 왔다. 성공할 경우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렸고, 실패하더라도 그 활동으로 인한 부산물을 사회 질서에 부여했던 것이다.
헬조선주의자들은?
헬조선주의자들이 하는 말의 핵심은 이렇다. '이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탈조선이 답이다.'
이 생각의 핵심은 급진주의자와 닮아 있다. '이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현실을 냉혹하게 평가하는 것은 개혁의 첫 걸음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내는 힘이다. 위에 언급했던 급진파들 역시 가망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위기의식이 사상과 행동의 근원이 되었다.
하지만 헬조선주의자가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결론에 있다. 헬조선주의자들이 내놓은 결론은 '탈조선이 답이다.'란 것이다. 안타깝게도 성공한 급진주의자들과 달리 헬조선주의자에게는 현실 개혁에 대한 방안도 없고 의지도 없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정말 '탈조선'을 할 능력과 의지가 있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단지 분노와 좌절에 '헬조선'을 외치며 누군가 도와주길 바랄 뿐이다. 그들은 결코 '탈조선'하지 못한다. 정말로 '탈조선'을 이뤄내는 사람은 '도피적'이 아니라 '진취적'이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사람, 명확한 목표가 있는 사람만이 '탈조선'에 성공한다. 지금의 헬조선주의자들은
멋진 탈조선을 보여다오
서두에 말했지만, 나는 헬조선주의자들을 애국자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들이 발견한 문제점을 전파하고 있다. 사회 질서에 익숙하고 길들여진 이들에게 세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간혹 어린애 투정같은 내용도 보이긴 하지만) 그들의 불평, 불만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고 논리적이며 체계적이다.
자기 나라에 대한 문제점에 이토록 관심있는 이들이 애국자가 아닐 수가 있을까? 뭔가 여의치 못한 상황과 비루한 자신의 모습에서 그 관심의 표현이 분노와 비아냥거림으로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은 분명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고 있다.
지금의 헬조선주의자들에게 결여된 것은 개선의지다. 그들은 냉소적인 태도로 대한민국을 비웃고 있다. 세상을 구경하듯이 바라보며 비웃고, 자신과 대한민국을 분리시켜놓고 일종의 현실도피적 자기 위안을 하고 있다. 하지만 냉소주의자의 본질은 '불만은 있지만 정작 변화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겁쟁이'라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개선의지가 빠져있는 불만은 그저 자신의 삶을 좀먹는 염세주의적 자살 행위다.
현재 대한민국의 팍팍한 삶에 지쳐있는 이가 굉장히 많으며, '헬조선'이라는 단어에 공감을 표하는 이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헬조선주의자들은 굉장히 힘있는 세력이 될 수 있다. 용기를 가지고 자신들이 관찰해 낸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과 의지를 찾아낸다면 사회 전반의 변화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이다.
주저앉아 투덜거리지만 말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라. 사회전반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그 지적능력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해결방안을 찾아 비젼을 제시하고 행동하라. 하다 못해 표어를 만들어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죽창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헬조선 커뮤니티의 이 자극적인 타이틀 아래 유대감을 느끼는 자신들의 모습만 보아도 스스로 뭔가 느끼는 바가 있지 않는가?
'탈조선'이 꼭 이 땅을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눈에 비친 헬조선이 대한민국으로 바뀌는 것. 그것이 보다 진정한 의미의 '탈조선'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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