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 거리

일본어 남용이 특히 옳지 못한 이유 - 어떤 블로거의 글을 읽고

 

 

 

 

 

 

 

우연히 어떤 블로그를 보았다. 친한 후배와의 대화에서 일본어 사용에 대한 지적을 받자, 일본어만 나쁜 것이 아니라 모든 외국어가 나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일본어 사용이 다른 외국어 사용보다 더 나쁜 것인 이유를 '역사학적 측면'이 아니라 '언어학적 측면'에서 설명해준다면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공언한다.

 

물론 이 블로거(이하 블로거로 호칭)가 쓴 글의 핵심은, '국어를 사랑하자.'이다. 외국어를 남용함으로 국어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행위는 해악이며, 이에 있어서는 일본어, 영어에 차등을 둘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합리적인 생각이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외국어 남용의 해악을 논하며 '언어학적 측면에서 일본어가 더 나쁨을 설명하라.' 요구하는 모습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외국어 사용의 해악을 논하는 것은 이미 언어학적 측면을 넘어선 것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뭐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에게 일본어만이 가진 위험성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하는 걱정 때문이다. 애니, 망가 등 근래 일본 문화에 잦은 노출을 경험한 세대에게서 이와 비슷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해서 걱정스런 마음에 몇자 적어본다.

 

블로거가 가진 일본어에 대한 인식 중 옳지 못한 것이 두가지 있다.

① '역사학적 측면'을 고려하지 말자는 것. ②'언어학적 측면' 에서 일본어 사용이 특별히 해롭지 않다는 것이 그 점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언어학적 옳고 그름이 아니라, 우리에게 옳고 그름을 생각해야 한다.   

 

블로거는 일본어 사용이 타 외국어 사용보다 나쁜 이유를 '역사학적 측면'은 고려하지 말고 설명해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전문 학자'적인 이야기이다. 세상을 통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분야에만 집중해 특화된 사람이 펼칠 법한 논리라는 뜻이다.

 

담배는 좋은가 나쁜가?

'식물학적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의학적 측면'에서는 나쁘다.

 

우리가 살면서 특정한 한가지 측면에서 옳다하여 무조건적인 수용을 하는 것이 옳은가? 혹은 반대 측면에서 그르다하여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는 것이 옳은가? 당연히 아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측면만을 고려하여 얻은 판정을 진리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상황을 종합하여 해석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일본어을 생각해보자.

 

언어에는 그 나라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단어하나, 문장 하나에 그 나라 국민의 뿌리, 사고방식, 주체성, 미래까지 담겨있는 것이다. 이를 알기에 일제는 국어말살정책을 폈다. 국어의 의미를 훼손하고 그 뿌리를 찾지 못하게 했다. 일본어로 사고하고 일본어로 대화할 것을 강제했다.

 

현재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일본어 잔재에는 바로 그 일제의 정신이 심어져 있다. '일제는 우월하고 한국은 비천하다.' 우리가 생활 속에 섞어쓰는 일본어는 일제의 그 의식을 일깨우는 장치로 작용한다.

 

일본은 아직도 우리와 분쟁하고 있는 국가다. 독도, 위안부문제, 역사 왜곡.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며 그들이 심어두었던 정신을 일깨우는 것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이 어떠한지에 대해서 반드시 생각하고 행동함이 옳지 않겠는가?

 

때문에 일본어를 생활 속에서 사용함에 있어서는 단순히 블로거가 말하는 '언어학적 측면'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일본어가 우리의 역사에 작용하는 해악을 반드시 고려함이 옳다 하겠다.

 

 

둘째, 생활속 일본어 사용은 '언어학적 측면' 에서도 해롭다.

 

블로거가 정확히 어떤 의미에서 '언어학적 측면' 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문맥상으로 봤을 때 전문적인 언어학을 언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어의 본질을 가리키기 위해 언어학을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언어의 본질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자면 언어의 목적은 소통이다. 소통을 위해서는 그 언어의 본 뜻에 대한 파악이 용이 해야 한다. 단어의 뜻과 문맥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파악하기 위한 것이 언어의 본질인 셈이다. 그래야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하고 오해의 소지가 줄어드는 것이다. 하지만 생활 속 일본어는 바로 이 점에서도 해악을 끼친다.

 

간단한 예로 일본식 외국어를 생각해보자. 일본식 외국어란, 본래 존재하는 외국어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단어를 가리킨다. 엑기스, 미싱, 레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어떤가. 읽고 나서 이것의 본 뜻이 무엇인지 바로 이해가 되는가?

 

엑기스 = extract (네덜란드어, 추출하다)

미싱 = machine (영어, 기계)

레자 = leather (영어, 인조 가죽)

 

올바른 언어 생활을 위해서는 어림짐작으로 단어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가 가진 본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일본식 외국어는 바로 그것을 어렵게 만든다. 단어의 본 모습을 변형시킴으로 온전한 이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machine 은 기계를 가리키는 것이나, 일본식 외국어인 미싱으로 변하면서 본래의 모습과 의미를 잃어버렸다.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그나마 단어의 본 뜻을 파악하기가 용이하다. 하지만 일본식 외국어는 본래 외국어의 모습을 변형시키고 그 뜻을 변질 시키기 때문에 '언어학적 측면'에서도 타 외국어보다 더욱 해롭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어에는 우리에게 미치는 특별한 위험성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한국인이라면 블로거가 말하듯이 특정 '측면' 에서만 일본어를 고려해서는 안된다. 일본어가 한국인에게 특별히 위험한 언어가 아니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두가지 과제가 있다. ① 완전한 과거청산 - 여기에는 친일파 척결에 더해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남긴 정신적 상처까지 치유함이 포함된다. ② 일본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고 바로잡으며 재발 방지를 맹세할 것.

 

가슴속에 증오를 품어서는 안된다. 증오는 그 주인을 파멸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모략에 넘어가서도 안된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여 상대방의 장단점을 보고 취하고 버릴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과오를 명확히 인지하고 그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형성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언어생활에 있어서 일본어를 보는 관점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고 하겠다.

 

 

 

지금까지의 글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일본어 그 자체를 익히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의사소통을 해하는 남용이 문제다.

2. '우리'에게는 일본어만이 미치는 특수한 위험이 있다. 이를 기억해야한다. 

3. 일본식 외국어는 본래의 단어가 가진 의미를 훼손하기에 타 외국어 보다 더욱 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