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그들의 애국심
영화 변호인. 고 노 전대통령을 모티브로 하여 제작 되었음이 큰 화제가 되었고 그와 동시에 많은 구설수에 오른 작품이다. 관람객들의 영화 평에는 각자의 정치성향에 따른 찬양과 비난이 공존하지만 영화 자체가 가진 메세지와 배우들의 열연은 영화를 본 이들로 하여금 순수한 감흥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천만을 넘어서는 관객수가 영화 그 자체의 가치를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정치색을 강조한 선전물이라면 그토록 많은 이들의 여가 시간을 감당해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영화의 스토리는 평이하다. 가난한 고졸 고시생 송우석(송강호)이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판사로 근무하게 되지만 소위 엘리트 출신 법조인들의 차별에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변호사 개업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돈되는 일에 매진하다 고시생 시절 신세를 졌던 국밥집 주인의 아들이 '부림사건'에 휘말리게 됐음을 알게 된다. 규모있는 건설사의 전담 변호사가 되어 부를 누릴 기회가 오지만 이를 마다하고 국가보안법 사건의 변호인으로 나선다.
반전이라고 할만한 반전도 없고, 법정 영화라고 하기에는 법정 싸움에 대한 치밀한 묘사도 약하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심장이 뛰었고 목이 메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 외에도 천만관객 모두 아마 그러하지 않았을까. 평범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는 영화임에 분명하나 무엇이「 변호인」에 특별함을 부여한 것일까. 내 나름대로의 이유를 찾아 본다.
1. 열연.
첫째는 배우들의 열연이다. 특히 비중이 가장 컸던 송강호의 연기가 빛났다. 과하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뿜어내는 감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쉽게 몰입하여 감정이입이 되도록 한다. 재판과정에서 원고측의 부당하고 부조리한 주장에 맞서 내뱉는 송우석(송강호)의 논리정연한 주장에 실린 분노와 당혹의 감정은 '그렇치'하며 손뼉을 치게 만들기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했다.
2. 부조리.
권력 유지를 위해 무고한 국민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처벌한다. 그것도 법치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법의 이름으로 말이다. 이토록 무서운 일이 또 어디있을까. 평범한 생할을 꾸려가던 소시민이 어느날 갑자기 국가전복을 시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실형을 받는다. 이것이 나와 가족과 이웃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음을 생각해보면 끔찍하기 짝이없다.
군사정권 시절의 국가보안법은 일종의 권력 유지 수단이었다. 반대세력을 말살하고, 자극적인 사회이슈를 생성해 국민의 관심을 쏠리게 만드는 좋은 도구였던 것이다. 죄가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무고한 사람까지 '빨갱이'로 몰고 낙인 찍어버린 후 국가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고 여기던 시절. 그 시절에 국가보안법 피고인의 변호인으로 나선다는 것은 고생길로 들어서는 것이고 탱크 앞에 맨몸으로 드러눕는 꼴 이었다.
「변호인」은 그 모습을 묘사한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에 따라 각본이 짜여지고, 양심선언을 한 군관계자 증인이 탈영자로 몰려 헌병대에 압송당하며, 피고 측의 정당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원고 측의 주장대로 판결이 난다. 거대한 힘 앞에서 설 곳을 잃은 정의가 유린되는 모습에 대한 묘사는 통쾌함에 더불어 분노를 끌어낸다.
어쩌면 우리들이 자주 보던 모습이 아닌가. 학교에서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옳고 그름에 무관하게 정의를 모른척해야 했던 일들. 해야할 말, 하고 싶었던 말을 가슴에 묻어워야 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변호인」은 정의를 억눌러 버리는 부조리함이 우리의 주변에 항상 산재하고 있음을 상기 시키며 잊고 있던 '옳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를 다시 일깨운다.
3. 애국심.
무고한 국민을 반국가세력으로 지목하고 고문을 가해 거짓 자백을 받아내는 이가 애국가가 울리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이 모순된 장면이 영화 전반을 통틀어 시사하는 바가 가장 크다고 느껴진다.
정의라 믿고 행하는 일, 하지만 무엇이 정의인가. 정의의 기준은 무엇인가.
진정한 국가란 무엇이며, 그들이 말하는 국가란 무엇이었는가.
그들이 그토록 잔혹한 죄를 짓고도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영화 속 원고 측 인물들은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한다 믿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한다. 비록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 상식과 이성에 어긋나는 일 일지라도 자신이 하는 모든 것들이 '국가'를 위한 것이라 믿으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부여했다. 그렇기에 대중의 입장에서 죄인임이 명백함에도 그들이 그토록 당당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정작 그들이 국가라 믿고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이 아니라 '한명의 권력자' 였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옳은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자문 없이 세태와 상황에 의해 세뇌되어 살아가는 것. 그 속에 참된 애국심은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애국심이란 권력 유지를 위한 노력일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변호인」은 우리가 믿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이며 살고 있는 삶은 무엇인지, 그 삶 앞에 진정 떳떳한지, 우리가 떳떳하다 여기는 이유가 올바른 근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마치며.
오랫만에 본 돈내고 볼만한 영화였다. 폭력적이거나 잔인하거나 선정적이지 않으면서 영화에 몰입할 요소를 갖추고 있으며, 진중한 메세지를 담고 있어 보고 난 후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 가족 영화로도 추천할 만 하다. 한국에서 이렇게 가치 있는 영화가 나온 것과 과거에는 매우 민감한 사항이었을 소재가 이제는 특별한 제재 없이 공유될 수 있게 된 현실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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