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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산책

노킹 온 헤븐스 도어 Knockin' On Heaven's Door, 1997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노킹온헤븐스도어

 

감독   토머스 얀

 

 

 

 

 

이제는 식상해진 질문이다.

 '만약 내일 당신이 죽는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마주하면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러면서도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마지막 순간을 가정함으로 인해 비로소 자신이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만드는 질문이기도 하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감독 토머스 얀은 그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죽기 전에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천국의 문앞에 선 사람들을 통해서 그는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

 

 

삶, 목적지, 죽음.

 

 

'천국의 문을 노크하다.' 의역하면 '죽음의 문앞에서' 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영화는 시종일관 죽음과 함께 한다. 코믹한 장면이 이어지다가도 갑자기 고통에 몸부림 치는 마틴의 모습을 통해 관객은 죽음이 이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계속 상기한다. 죽음이라는 어두움과 이들이 보이는 유쾌한 모습의 부조화 속에서 관객은 묘한 감정의 혼재를 경험한다.

 

루디와 마틴은 골수암,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사람들.  그들은 같은 병실을 사용하게 되며 각자의 사정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동병상련을 느낀다. 무엇하나 이뤄 놓은것 없는 아직 젊은 나이. 죽음이라는 확정된 미래 앞에서 그들은 잠시 방황한다.

 

 

 

 

 

 

어차피 곧 죽을 거 먹고 마시자. 병실에서 발견한 데킬라를 나눠마시며 일탈을 즐기는 루디와 마틴. 술을 마시던 도중 문득 바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천국에서는 이야깃 거리가 없다. 바다의 아름다움과 바다에서 보는 석양만을 이야기 한다.'

 

바다를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하는 루디. 여유를 부리던 마틴 역시 바다를 본 적은 없다. 이제 두사람은 바다를 보기 위해 떠난다.

 

 

 

노킹온헤븐스도어

 

 

 

병실을 나와 주차장에 다다른 두사람은 그들의 여행에 자유를 더할 기회를 만난다. 트렁크에 백만마르크가 실려 있는 갱단의 차가 바로 그 것. 하지만 아직 백만마르크의 존재는 알지 못한채 술김에 차를 훔쳐 타고 바다를 향한다.

 

 

 

 

 

 

환자복 차림이던 두사람은 멋진 옷을 사입고자 한다. 하지만 돈이 부족하다. 이때까지도 트렁크에 있는 백만마르크의 존재를 몰랐기에 마틴은 대범하게도 은행을 턴다. 이후 두사람은 갱단과 경찰 양쪽에게 쫓기는 처지가 되고 만다. 경찰에 붙잡힐 위기, 갱단과의 조우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백만마르크를 이용해 자신들의 버킷리스트를 이뤄가며 꿋꿋히 바다를 향하는 두사람.

 

 

 

 

 

 

결국 그토록 바라던 바다에 도착한다.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두사람. 로우 앵글에서 하이 앵글로 전환해가며 거대하게 펼쳐진 바다를 향하는 조그마한 두 사람의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이,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밥딜런의 노래 「Knockin' On Heaven's Door」와 어우러진다. 보는 이는 오감이 자극되며 짜릿한 전율이 척추에 흐른다. 두 사람은 묵묵히 바다를 향해 걸어간다. 마치 천국의 문, 또는 천국 그 자체 처럼 혹은 세상 모든 죽음을 관장하는 신처럼 자리한 바다를 향해서. 그리고 그 곳에서 마틴은 죽음을 맞는다.

 

 

굴레를 벗어나

 

 

 

 

 

영화 중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동료인 마틴이 고통으로 쓰러지자 약국으로 뛰어간 루디. 마틴이 먹던 약이 담긴 병을 내밀며 약을 달라 하지만 약사는 처방전을 요구하며 거부한다. 루디는 사정하며 돈이라면 얼마든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잠시 후 총을 꺼내 든 루디. 약사를 향해 위협 사격을 하여 약을 얻어낸다.  

 

이 전까지만 해도 루디는 마틴의 급진적인 행동을 말리는 입장이었다. 어떻게든 규칙과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루디는 그 모든 구속을 벗어던진다.

 

쉽게 생각하면 죽을 날 얼마 안 남은 자의 객기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달리 생각해보면 루디는 처음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신이 이 순간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을 위해 그 외의 가치를 모두 내 던진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동료의 고통, 확정된 죽음이라는 현실에 대한 인식에 의해 사회적 체면, 자신을 옭죄던 구속을 집어 던지고 비로소 자신의 의지를 순수하게 세상에 드러내 보이게 된 것이다. 진정한 자유인으로써의 모습을 묘사하기 위한 장면으로 여겨진다. 

 

물론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는 것이 옳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루디와 마틴 처럼. 루디는 단지 죽음의 순간이 우리보다 가까이 와있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용감하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불필요한 가치들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 

 

우리는 단지 루디와 마틴보다 죽음의 순간이 조금 더 많이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다면, 우리을 옭아메는 것들 - 체면, 자존심, 허영 등 - 로 부터 벗어나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는 순수한 의지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감독은 결국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가

 

 

 

 

 

 

갱단에게 붙잡힌 마틴과 루디. 위기의 순간에 난데없이 갱단 보스가 등장한다. 두사람으로 부터 돈을 되찾기 위해 잔인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까 싶지만. 웬걸. 바다를 보았느냐고. 아직 보지 않았다면 뛰라고.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보스의 독백. 천국에서의 대화 주제는 바다로 떨어지는 석양의 모습 뿐이다.

비과학적이고 개연성이 부족한 코믹 영화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왠 뚱딴지 같은 전개?

하지만 이 장면이 영화「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핵심을 담고 있다.

  

영화에서 초입에 루디와 마틴이 했던 대화.

'천국에서 하는 이야기는 한가지다. 바다와 바다의 석양 이야기.'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 왜 천국에서는 바다와 석양 이야기 밖에 할 말이 없다는 말일까?

  

이것이 영화를 관통하는 진짜 주제다.

 

죽음을 앞에 둔 두 사람은 의기소침하거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루디와 마틴은 '천국에서 할 이야기 거리'를 위해 바다를 향한다. 그리고 끝내 바다에 도착하여 바다의 웅장하고 찬란한 모습을 눈에 담는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 한다.

 

석양지는 찬란한 바다는, 우리가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로 찬란한 순간과 동일시 된다.

가슴이 터질 듯한 감동, 최고의 희열, 행복했던 순간.

결국, 그 순간을 품은 이 만이 천국에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즉, 죽더라도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여태 살아 오면서 과연 마틴과 루디가 마주 했던 그 바다의 모습과 같은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가슴뛰는, 그 모든것을 희생해서라도 손에 넣고 싶은 무엇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과연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며 살고 있는지 말이다.

우리도 죽는다. 루디와 마틴처럼.

 

우리는 찬란한 바다를 보았는가?

 

아직 찬란한 바다를 보지 못했다면, 인생 최고의 순간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어서 뛰어라.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이것이 감독이 관객에게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 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