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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산책

전쟁을 통한 인간 묘사 「피아니스트, 2002」

 

 

 

 전쟁을 통한 인간 묘사.  「피아니스트, 2002」

 

 

 

2차 세계 대전. 인간의 이기심과 무지, 증오로 시작되어 참혹한 상처를 남긴 전쟁. 정치, 문화, 경제에 대 변혁을 가져옴으로 전 세계 인간의 삶에 크나 큰 영향을 미친 사건. 당시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5천만 명으로 추산. 현재 대한민국 전체 인구보다 많은 수의 목숨이 꺼져갔다. 말 그대로 사람 목숨이 벌레만도 못한 비참한 시기였다.

 

이 아비규환 속에서도 특히 기억되는 사건이 있으니 홀로코스트라는 명칭으로 대표되는 유태인 대학살이 그것이다. 전쟁 속에서 그에 버금갈 만큼 비참한 사건이 또 있지 않았겠느냐 만은, 하나의 민족 전체에 대한 격렬한 증오를 바탕으로 한 '인종말살정책'의 충격상. 전쟁 후 독일의 완전한 사과와 반성 속에서 전쟁 범죄 내역에 대한 숨김없는 공개와 증명을 통해 확보된 풍부한 자료가, 사람들의 인식 속에 홀로코스트를 제 2차 세계 대전 최고의 비극으로 남기는데 일조하였을 것이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그 아비규환에서 살아나온 유태계 폴란드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폴란드 국영방송에서 연주하던 피아니스트라는 특정 계층의 시선으로 폴란드에 거주했던 유태인들이 나치 치하에서 겪게 된 현실을 영상에 담아냈다.

 

영화는 방송국에서 연주하는 스필만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연주 도중 독일군의 폭격이 시작되고,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시작된 지 오래지 않아 폴란드는 독일의 수중에 떨어진다. 서서히 시작되는 유태인에 대한 제재, 강제 이주, 처형. 가족이 산채로 흩어지고 그중 누군가는 죽음을 맞는다. 부모 잃은 아이, 아이 잃은 부모, 남편과 아내를 잃은 이들이 울부짖는다.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게토로 강제 이주되는 유태인.

    인형을 품에 안고 엄마의 손을 꼭 쥔 저 아이는   

    닥쳐올 미래를 조금이라도 알았을까.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언제나 어린아이들이다.

 

  ▲ 텅 빈 새장을 든 채 부모를 찾으며 우는 아이.

     강제 이동되며 최소한의 소중한 것을 챙겨나왔을

     터인데, 이 아이는 새장을 한 손에 들고 있다. 이미 비

     어버린 새장. 소중히 여기던 이쁜 새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영화 전반에 걸쳐 우리는 유태인에 대한 억압 과정에 집중하게 된다. 공원이나 특정 식당에 유태인 출입금지 표지를 설치하고 유태인 출입을 제한한다. 유태인에게 일정 액수 이상의 현금 소지를 금지하고, 유태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하늘색별이 그려진 완장을 차고 다니게 한다. 완장을 착용하지 않고 외출한 유태인이 발각될 경우 강제수용소로 연행할 것을 경고하며 유태인의 반발을 억누른다.

 

 

길들임과 순응

 

이 과정에서 나치는 교묘한 전술을 사용한다. 만약 전쟁 초기부터 유태인을 학살하였다면 대대적인 저항에 부딪쳤을 것이다. 하지만 나치는 제재의 강도를 서서히 높였고, 그 대상을 유태인 및 나치 반대자로 한정했다. 이는 대중을 길들이는 법과 대중의 나만 아니면 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은 전술로 보인다.

 

영화 속 대사에 의하면 폴란드에 거주하던 유태인은 약 50만 명. 나중에 그 수가 6만 명까지 줄어든다. (확인하진 못했으나 종전 후에는 50만 명 중 20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 동안 유태인들은 변변찮은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나치의 악행을 감내하기만 한다. 막강한 힘 앞에서, 부당한 대우에 순응하는 인간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진다. 그 중 인상에 남는 몇 장면이 있다.

 

 

피아니스트

 ▲ 봉변당하는 주인공의 부친.

     뒤편에 모른척 지나가는 두 여성이 보인다.

 

피아니스트

 ▲ '어디로 가나요?' 

     강제 이동되며 행선지를 묻는 유태 여인에게 

     독일 군인은 대답 대신 총을 발사한다.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 총살 도중 탄약이 떨어져 탄창을 교체하는 독일장교.

10여초의 공백. 유태인은 죽을 순간을 그저 기다린다.

뒤편의 유태인 동료들은 이번은 자기 차례가 아니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1. 주인공의 아버지가 독일군인에게 봉변을 당하는 장면. 유태인들이 아직 게토로 강제 이주 되지 않아 자유가 어느 정도 허락된 시기. 독일군인은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태인 완장을 찬 채로 집으로 돌아가던 주인공 아버지의 뺨을 후려친다.

 

2. 질문을 한 유태 여성을 사살하는 장면. 인력을 구분하여 강제 노역과 대량 학살을 시작하는 시기. 독일군이 공장 숙소에 있던 유태인을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려 하자. 한 여성이 질문을 한다. ‘어디로 가나요?’ 군인은 대답 대신 이마에 총을 발사한다.

 

3. 총살 중 탄약이 떨어져 탄창을 갈아 끼우는 장면. 인종말살정책이 그 본모습을 드러낸 시기. 강제 노역을 마치고 돌아가는 유태인 무리를 독일군 장교가 멈춰 세운다. 그리고 덩치가 작고 나이든 유태인을 골라내어 바닥에 엎드리게 한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어지는 발포. 독일군 장교는 엎드린 유태인의 뒤통수에 한발씩 권총을 쏘며 지나간다. 마지막 한명. 탄약이 떨어졌다. 장교는 당황하지 않고 새로운 탄창을 꺼내어 끼운 후 마지막 한명에게 발포한다.

 

이 세 장면은 억압자와 피억압자, 그리고 방관자의 모습을 잘 설명한다. 억압자인 나치는 개구리를 솥에 넣어 삶아 죽이듯이 작은 단계에서부터 유태인을 억압한다. 절대 권력 앞의 유태인은 참고 감내한다. 그 억압에 맞서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랬기에 억압의 정도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 믿고 현재 눈앞의 부당함을 인정하고 따른 것이다. 하지만 결국 억압은 극에 치달아 독일군 장교 한명의 직감적 판단에 의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까지 이른다. 탄창을 갈고 나면 반드시 죽을 것임을 알면서도 독일군 장교의 지시대로 땅바닥에 엎드려 권총이 발사되기를 기다리는 유태인. 그 모습은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당하게 될 때 얼마만큼 무능력해지는가를 생각하며 전율하게 만든다.

 

그 상황들에서 직접적인 죽음의 표적이 되지 않는 이들은 모두 침묵한다. 유태인에 대한 차별과 가혹행위를 보면서도 폴란드인들은 보지 못한 일 인양 자리를 피하고, 같은 집단에 속한 유태인조차 바로 옆 동료가 그토록 허망하게 죽어감에도 아무도 저항하지 않는다. 그 대가는 죽음임을 알기에. 그 순간을 모면하면 자신은 살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하지만 타인이 당하는 부당함에 대한 방관은 결국 자신이 당할 부당함의 순번을 기다리는 것일 뿐이었다.

 

이 모습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당함이 발생할 때 우리는 과연 합리적인 방법으로 그에 저항하는가. 아니면 순응하고 길들여지는가. 누군가 부당함을 겪는 장면을 보았을 때 다음차례는 내가 아니길 바라며 눈을 감는가. 아니면 힘을 모아 저지하는가. 왕따 문제, 사회소외계층에 대한 차별, 누군가 겪는 부당함에 대한 무관심. 우리는 잔혹한 나치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치의 억압에 길들여진 유태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부당함의 순번을 기다리는 방관자는 아닌가?

 

 

선의와 이기심

 

주인공 스필만은 게토에서의 생활 중 탈출을 감행하여 성공한다. 탈출과 나치로부터의 도피가 가능했던 이유는 그를 돕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잔혹한 나치의 압제 아래에서, 유태인을 숨기거나 도우면 유태인과 같은 처벌을 받을 것임을 알면서도 유태인에게 도움을 베푼 이들이 존재했다. 스필만 역시 그런 이들의 도움에 의해 도피 생활을 견뎌낸다. 피아니스트로 명망 높던 그를 돕고자 하는 다른 예술가, 나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전쟁 전 친분을 맺은 여성과 그 남편. 그들이 은신처와 식료품을 공급해주며 스필만의 도피를 돕는다.

 

스필만은 그 과정에서 이용을 당하기도 한다. 은신처로 식료품을 공급하기로 한 이가 스필만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모금을 한다. 하지만 마지막 식료품을 전달한 그는 이후 스필만의 은신처에 발길을 끊는다. 모금으로 모인 돈을 가지고 도망가 버린 것이다. 은신처에 홀로 남겨진 채, 음식 공급을 받지 못해 굶주린 스필만은 싹이 난 감자 한 알을 먹고 병이 난다. 그대로 있으면 목숨을 잃을 상황. 다행히 은신처를 제공해줬던 부부가 방문하여 스필만의 상태를 보고 의사를 불러 치료를 받도록 돕는다.

 

나치에 의해 목숨을 위협받는 극한 상황에 처한 이를 앞에 두고도 그의 목숨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했던 사기꾼이 보여준 이기심은 인간의 욕망과 본성에 대한 회의를 불러온다. 하지만 나치의 잔혹한 억압에도 불구하고 스필만을 돕고자 하는 모금에 성금을 보탠 이들이 있었다. 스필만의 도피를 도우며, 위험을 무릅쓰고 의사의 도움을 요청했던 이들이 있었다. 자기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도 누군가를 돕고자 했던 이들의 존재는, 그래도 인간이 완벽히 나약하거나 악하지 않다는 위안과 희망을 품게 한다.

 

 

선인과 악인의 기준

 

레지스탕스 소탕을 위해 스필만이 은신해 있던 건물에 포격이 가해진다. 은신처를 잃은 스필만은 새로운 거처를 찾아 헤매지만 포격에 박살나지 않은 건물을 발견하기가 힘들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건물 한 채. 외벽이 다 벗겨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 같은 모습을 한 주변 건물과는 대조적으로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 곳의 다락방을 새로운 은신처로 삼은 스필만은 먹을거리를 찾아 건물을 배회하다 독일군 장교와 마주친다. 이 후 피아니스트를 본 이들 중 다수가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는 독일군 장교 앞에서의 피아노 연주가 이어진다.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독일군 장교 앞에서 연주하는 스필만과 그의 연주를 경청하는 독일군 장교.

 

 

독일군 장교는 군사행정 사무실 장소를 물색하러 왔다가 스필만과 마주쳤던 것이다. 스필만의 연주에 감명 받은 독일군 장교는 스필만이 은신해 있던 건물에 사무실을 설치하고 수시로 다락방에 숨어있는 스필만을 찾아가 식료품을 건네준다. 이 장교는 나치의 이념에 크게 세뇌되지 않은 인물로 보인다. 유태인이란 이유로 스필만을 경시하지 않으며 그가 가진 재능을 존중한다. 그리고 나치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는 상황을 스필만에게 전달하며 조금만 견디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는 농담 투의 말도 한다. 결국 독일이 패퇴하여 전선에서 철수하는 상황이 오자 마지막으로 스필만을 찾은 독일군 장교는 이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묻는다. 전쟁이 끝나면 꼭 그의 연주를 들어보겠노라면서.

 

이 독일군 장교의 존재는 무슨 의미일까. 잔혹하기 그지없는 만행을 저지른 나치 조직 내에도 인간으로서 갖추어야할 양심과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이가 존재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그도 분명 나치의 일원이고 나치에 의해 자행되는 전쟁범죄를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선의를 보일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지자 나치의 적인 유태인에게 선한 사람이 되었다.

 

장교의 책상 한쪽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가족사진은, 그도 따뜻한 남편이며 아버지임을 대변한다. 뼛속까지 악인인 사람은 없다고 했던가. 스필만에게 도움을 베푼 독일군 장교는 자신의 역할에 의해 전쟁에 참전하긴 하였으나, 나치의 이념이 무조건 옳다고 믿은 사람은 아니었다. 누군가에 의해 세뇌되어 조종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과 임무에 충실할 수밖에 없기에 조직이라는 배에 올라타 운명을 함께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선인과 악인은 없다. 다만 상황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

동서양의 여러 철학자에 의해 제시된 이 명제는 과연 나치 추종자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일까.

 

 

그래도 그렇게 살아가고

 

독일군 장교의 도움으로 전쟁 막바지에 처했던 위험을 넘긴 스필만은 끝내 생존한다. 독일군이 철수한지 오래지 않아 영토 수복을 위해 폴란드 군이 시내로 진입한다. 그 모습을 보고 흥분한 스필만. 자신이 독일군 장교가 주고 간 독일군 코트를 입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밖으로 뛰쳐나간다. 스필만을 독일군으로 오인한 폴란드군의 사격. 이렇게 어이없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던 스필만은 다행히 오해가 풀려 고국의 품에 안긴다. 독일군이 물러가고 폴란드 군을 마주한 스필만의 심정은 어땠을까. 깨어날 수 없는 악몽에서 깨어나 꿈같은 현실을 목도한 그 환희. 합리적인 사고가 잠시 마비 될 만큼 스필만은 기쁨에 벅찼다.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 살아서 다시 만나게 된 유태인 음악가 동료(좌)와 스필만(우)

 

다시 돌아온 국영방송국. 말끔히 차려입은 스필만이 피아노를 연주한다. 그때 방송실로 들어오는 옛 동료. 스필만은 반가운 얼굴을 보고 큰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이내 붉어지는 눈시울. 짧은 순간 스필만의 가슴속에 수많은 감정이 오간다. 생사를 달리한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지옥 같던 순간들의 고통. 덧없이 목숨을 잃어가던 동포들에 대한 연민과 자괴감. 자신을 살리기 위해 애쓴 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한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거대하고 잔인한 폭력 뒤에 살아남은 자로서의 책임감과 고뇌가 한 순간 그의 표정에 묻어난다.

 

동료로부터 스필만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독일군 장교가 수용소에 수감되어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스필만은 그를 돕고자 수용소로 향하지만 이미 수용자들의 이송이 끝난 상태. 영화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스필만은 보답을 하지 못하고 독일군 장교는 소련의 포로수용소에서 죽음을 맞는다.

 

종전 후 스필만은 피아니스트 활동을 계속한다. 영화 마지막에서는 피아노 솔로로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하는 스필만의 모습을 보여준다.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 음악을 사랑하는 관객 앞에서 스필만은 건반을 두드린다. 독일군 장교 앞에서 목숨을 걸고 연주 했던 일이 정말 현실이었을까. 아니, 끔찍했던 그 전쟁에 대한 기억 모두가 거짓말처럼, 하지만 생생한 모습으로 스쳐 지나간다. 사랑하는 가족도, 정겨운 이웃도, 전쟁이 끝나면 연주를 들으러 오겠노라 했던 이도 모두 곁에 없지만, 스필만은 꿋꿋이 피아노 앞에서 자신의 길을 걷는다. 다시 그렇게 다시 살아간다. 어둡고 괴로웠던 동굴을 지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어간 이들에 대한 기억을 등에 업고. 그래도 그렇게 살아간다.

 

 

마치며

 

유태인 대학살을 다룬 가장 잘 알려진 영화는 「쉰들러리스트」와 「피아니스트」다. 쉰들러리스트가 유대인을 돕고자 하는 독일인인 쉰들러의 시점에서 심경과 행동 변화를 다뤘다면, 피아니스트는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한 유태인의 시각에서 재구성된 영화다.

 

때문에 피아니스트는 쉰들러리스트 보다 사건 속에서 유태인이 겪은 심리변화와 행동에 대한 묘사가 많다. 게토 내에서 강제 노동을 하던 유태인 집단이 겪은 고통, 도피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홀로 생존을 위해 사투하는 개인이 겪은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반성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게 하는 것이 역사의 역할이라고 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그 잔인했던 비합리와 부당함이 비단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와 유태인 간에만 있었던 일이 아님을 수시로 상기했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어떠한가. 지나간 그때 그들이 보였던 부당함을 다른 형태로 반복하고있지는 않은가. 인류는 지나간 세대가 이룬 토대를 밟고 섰기에 위대해질 수 있었다. 지난 세대의 고통과 실수로부터 배우고,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으며 굳세게 살아나가는 것. 그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책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