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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거리

아무런 약속 없는 열정페이. 그것은 기회가 아니다.

 

 

 

성룡이 주연을 맡은 영화 「취권」은 주인공이 취권 고수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성룡이 먼저 취권고수를 찾아가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는다. 처음에는 각종 허드렛일만을 도맡아 한다. 차츰 주인공의 성실함을 인정하게 된 사부는 조금씩 수련을 시킨다. 제자의 기초체력단련을 끝낸 후 본격적인 초식 훈련과 대련을 통해 무공의 완성을 지도한다. 결국 주인공은 취권을 터득하고 자신의 원수에게 통쾌한 복수를 한다. 영화는 그렇게 끝나는데, 아마 주인공은 자신 깨달은 무공을 바탕으로 또 다른 제자를 기르며 자신의 인생을 완성해 나갔을 것이다.

 

주인공은 요즘 표현으로 '열정페이'를 받으며 수련했다. 기반이 없는 젊은이에게 기회를 주는 대신 금전적인 보상은 바라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상호계약을 열정페이라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가르쳐 줄테니 대가를 바라지말고 일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취권 속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중요한 맹약이 존재했다. 바로 상호 신뢰와 보장된 미래다. 

 

무엇에 대한 상호 신뢰이고 보장된 미래인가?

 

'이 사람은 내 사부. 반드시 나를 높은 곳으로 끌어줄 것.', '이 녀석은 내 제자. 절대 나를 배신 하지 않을 완전한 내 사람.'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이와 같은 상호 신뢰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바쳐 믿고 따르면 반드시 취권의 고수가 될 것이라는 명확한 미래가 성룡에게 있었다. 그렇기에 성룡은 두려움 없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었고, 그에 대한 온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21세기의 '열정페이'에는 과연 그와 같은 맹약이 존재할까. 열정페이를 지급하는 기업들이 내세우는 피상적인 취지는 좋다. 배우고 싶지만 기회가 없는 젊은이에게 꿈을 이룰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의지와 열정이 있는 젊은이의 도전을 돕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인다.

 

하지만 21세기의 열정페이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첫째는 선택이 아닌 강요라는 것이다. 열정페이를 지급하는 회사는 대개 그 분야에서 명망과 권위가 있거나 신규자가 쉽게 진입하기 어려운 분야의 기업이다. 그런 곳에서 구인공고를 내며 애당초 '열정페이'를 공시한다. 지원자격을 줄줄이 열거해놓고 마지막에 '급여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는 식이다. 자원봉사, 서포터즈, 인턴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원하는 분야에서 일해 볼 기회가 열정페이를 지급하는 곳 뿐이다 보니 청년들은 인턴자리를 놓고도 수십, 수백대 일의 경쟁을 하게 된다.

 

이상하지 않은가. 배울지 말지는 배울 사람이 결정하는 것인데, 가르쳐 준답시고 무보수 노동을 먼저 요구한다니 말이다. 먼저 노동을 제안한다는 것은 그 기업에 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필요한 인력을 채용하면서 '가르쳐 주는 것이니 보수는 바라지 말라.'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둘째는 교육이 아닌 노동을 시킨다는 것이다. 미래의 인재육성을 취지로 한다면, 그에 걸맞는 대우가 필요하다. 즉, 실무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되 반드시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일하는 정직원은 쌓인 내공을 풀어내는 자리지만, 인턴직은 수련을 하며 내공을 쌓는 자리여야만 한다.

 

헌데, 현재 열정페이를 지급하는 일 자리의 업무 내용을 보면 직원 수준의 노동을 요구하거나, 잔심부름, 단순반복업무가 주를 이룬다. 충전을 위한 자리여야 하는 인턴이 오히려 자신의 능력과 시간을 소모하는 자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는 모집공고를 보고 도전한 젊은이들이 하는 경험이라고는 기성세대의 교활함 뿐이지 않을까.

 

셋째는 아무런 약속도 보장도 없다는 것이다. 모든 계약은 당사자간 주고 받는 이익이 상식적인 선에서 균등해야 한다. 당사자 중 한쪽이 일방적인 이익을 취하는 계약은 일종의 사기다. 열정페이로 맺어지는 계약의 경우 금전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대신, 명확한 미래가 보장되어야 마땅하다. 성룡과 사부의 경우 처럼, 당장 손에 쥐어지는 것은 없더라도 상호 신뢰와 보장된 미래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허나, 열정페이를 받는 젊은이들에게 보장된 미래는 없다. 회사는 이들을 신뢰하지 않으며 식구로 받아들여 꿈을 이뤄주고자 하는 의지도 없다. 그저 그들의 열정을 담보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런 논리를 편다.  

'어쨌든 좋은 경험 이잖아? 언젠가 다 도움이 될꺼야.'

이 얼마나 무책임한가. 이런 말은 배우는 당사자가 자조할 때 하는 말이지 기업이 할 말이 아니다.

 

약속 없는 열정페이는 착취일 뿐이다.

 

상호 신뢰와 미래의 보장을 기초로하는 쌍방간의 맹약이 존재하고, 반드시 지켜질 때만이 참된 의미의 열정페이라 할 것이다. 아무런 맹약이 없는 열정페이. 그것의 본질은 기회를 미끼로 열정 넘치는 청년들을 착취하는 부도덕한 행위일 뿐이다. 

 

답답한 일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취업난 속에 어떻게든 남보다 나은 인재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욕망과 최대한 적은 비용으로 높은 수익을 내려는 기업의 욕망이 만나 현대의 열정페이가 탄생해 버렸다. 기회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숨기고 착취하는 기업의 부도덕을 탓해야 할 것인가. 참된 사부를 알아 보지 못하고 그들에게 휘둘리는 젊은이를 탓해야 할 것인가. 실업률 감소를 목적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권장하며 열정페이 문화 확산에 일조하고 있는 정부를 탓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