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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산책

「에디톨로지」김정운

 

 

 

▲에디톨로지 (사진 중앙시사매거진)

 

 

에디톨로지 도서관 서가를 설렁이다가 제목이 눈에 뾱 들어와서 집어들었다. 첫페이지를 여는데, 오우. 이 책을 직접 본 이만이 느낄 수 있는 흥분. '그 사진 한 컷'이 나를 몰입시켰고,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라. 글을 굉장히 재미있게 써놨다. 단순히 말장난하는 유치함이 아니라, 다양한 정보와 나름 정제된 사상을 유들유들하게 녹여 놨다. 권위주의에 찌들어 있는 지식인 '글투'가 아니라, 자기 본능에 충실한 문체로 쓰여진 글이 사람을 책으로 빨아들였다.

 

책을 뽑아 들고 선 자리에서 챕터1을 거의 다 읽게 만들었다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굉장히 전략적으로 잘 짜여진 책이 아닌가 싶다. 제목에 이어, 스펙터클한 사진에 이어, 잔망스런 문체에 숨어 있는 흥미진진한 소재들의 전개가 독자를 쉽게 작가의 세계 속으로 끌어 들인다. 역시 책은 제목을 잘 지어야 한다. 아니면 작가가 매우 유명한 사람이던지. 그래야 책을 뽑아 보기라도 하니말이다. 이 책은 제목도 그럴 듯 하고, 작가도 아는 사람들은 알만큼 유명하다.

 

「에디톨로지」 인상적인 것은, 소재의 다양함과 작가의 인물됨이다. 우선 작가는 '에디톨로지'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에디톨로지는 다시 말해 '편집학'이다. 세상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구성되고,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이 모든 과정을 나는 한마디로 '편집'이라고 정의한다. (중략)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건과 의미를 각자의 방식으로 편집한다. 이 같은 편집의 방법론을 통틀어 나는 에디톨로지라고 명명한다. _ p.24

 

새로운 것의 창조. 그 과정에는 필수적이고 숙명적으로 '편집'이 사용된다는 이야기다.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이야기, 개념, 사건, 사물 등등을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고 녹여내는 것이 결국 창조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런 개념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나? '융합' 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그것말이다. 작가도 자신이 말하는 「에디톨로지」가 완벽히 새로운 개념은 아님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융합'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보다 현실화 시키려는 시도로 '편집의 방법론'을 제시하면서 이것에 「에디톨로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데이터 베이스 관리'가 가능케한 소재의 다양함

 

이 방법론을 묘사하기 위해서 저자는 수많은 사례를 들고 왔다. 사례들은 얼핏 연관이 없어 보일만큼 경계를 넘나든다. 에로티시즘에서 시작해, 사회문화, 건축, 회화, 음악,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친 '창조' 속에 사용된 '에디톨로지'의 흔적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새로운 관점을 알게 되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다. 이 경험을 쌓는 것이 지혜로워지는 과정 아닌가. 설사, 그 관점이 'DS(dog sound)'로 보일지라도 말이다. 작가가 제시한 관점 중에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 것들도 있는데, 이런 차원에서 그냥 너그럽게 읽어줘도 될 듯하다.

 

일반인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통찰한 사례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고나 아이디어를 찾는 사람들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리 풍부한 사례를 담아 놨을까? 저자는 '공부란 데이터베이스 관리'라고 표현했다. 정보를 모으고 효율적으로 정리하여 적시적소에 뽑아 쓸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 공부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데이터베이스 관리'를 통해 축적한 체계적인 자료가 풍부한 사례의 원천일 것이다. 책 속에는 '에버노트'를 이용해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저자의 노하우도 담겨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왠지 친숙함을 느끼게하는 저자의 솔직함

 

다음으로 저자의 인물됨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굉장히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고 산다. 자기한계와 장점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글 속에 고스란히 토해 놓는다. 지식인이라면 어느정도 '척'을 하면서 자기 말과 글에 권위를 부여하려는 시도를 하기 마련인데, 김정운에게는 그게 없다. '나는 썼으니 말이 되는지 안되는 지는 읽어보고 니들이 판단해라.'하는 식이다.

 

제 3자에게 고까움과 역겨움을 느끼게하는 권위주의가 쏙 빠져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호감을 느끼게 만드는 인간상이다. 물론 (작가가 고백하듯) 그의 이러한 태도가 그의 말에 귄위를 더하는 데에는 방해가 되지만 말이다. 자기가 변두리 학자이기 때문에 손해본 것들이 많다고 말하는 그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과 통한을 내보이기에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같은 주장을 했음에도 자기 글은 '씹힌' 반면, 미국의 어느 칼럼니스트의 글은 '대박'이 났다는 툴툴거림에서 그의 심정에 공감이 간다. 학자로서 겪어온 학계의 부조리, 국내 학계의 사대주의에 대한 비판에서도 생각의 여지를 남기게 만드는 작가이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데 책을 쭉 읽고 있노라면, 그래서 결국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에디톨로지라는 신개념에 대한 홍보 및 저작권 주장인가? 에디톨로지가 진리임을 증명하려고 한 것인가? 아니면 에디톨로지적으로 살라는 말인가? 그것도 아니면 '재미로' 에디톨로지를 알아보자는 건가?

 

에세이도 아니고, 논문도 아닌 상태에서 결론을 내지 않으니 읽다보면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뗏목에 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수시로 '내가 지금 읽고 있는게 에디톨로지에 대한 글이구나'라는 것을 자각시켜줘야 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자의적인 해석이고 작가가 보면 발끈할 지도 모르지만) 작가의 인생스타일이고, 하고자 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 이게 에디톨로지다. 내가 발견했지. 나 완전 대단한지? 그럼 이제 가 봐.'

자기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해낸 (장난꾸러기) 학자의 뿌듯함이 묻어난다고 해야 할까? (물론 나만의 느낌일 뿐)

 

신나는 책이다. 그렇다고 가볍지 않다. 작가가 자신했듯 심혈을 기울여 쓰여진 책이다. 평범한 사람이 이루기 힘든 깊이가 담겨 있다. 독서는 사람과의 만남. 책에 담긴 작가의 내면이 깊고 진할수록 그 만남은 신난다. 재미있고 일상적이지 않은 상상에 젖어보게 만들어줄 김정운과의 만남을 당신에게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