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서 산책

다산에게 배우다. 「다산의 독서전략」 권영식

 

 

 

다산으로부터 세상을 정리하는 법을 배운다.

 다산의 독서전략

 

 

 

 

 

 

 

종류 : 자기계발서

분야 : 독서법

저자 : 공무원, 작가. 추천도서선정 및 소개글을 쓰는 업무를 맡은 후 책읽기에 눈을 뜸.

 

 

 

 

왜 다산 인가?

 

 

다산 정약용. 그는 매우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학문을 하는 학자였다. 그의 세계는 관념 속에 있지 않았다. 형이상학적인 사고에 집중하는 학문이 아닌, 실세계에 즉각 영향을 미치는 학문을 추구했다. 읽기 위해 읽는 독서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한권의 책을 읽으면 그만큼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결과물을 내는 것이 진정한 독서라고 다산은 믿었다.

 

아들이 '양계'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단순히 닭을 기르는데 그치지 말고 더 나은 방법을 실험해 정리하여 책으로 펴 낸다면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 조언할 만큼 다산은 학문과 생활을 하나의 맥락에서 해석하고자 했다. 이는 그의 저서를 살피면 더욱 명확해진다.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 마과회통, 여유당전서, 다산주역 등의 책들은 모두 백성의 실생활과 직결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과연 한 사람이 한 것이 맞는지 의심이 갈 만큼 방대한 저술을 했다. 이는 다산의 불굴의 의지와 애민정신 그리고 전략적이고 효율적인 독서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학문을 추구하며 놀라운 저술 활동을 해낸 다산. 그의 정신과 학문법을 살피는 것은, 넘쳐 흐르는 지식 속에서 참 지식을 찾아내는 것이 생존비결이 된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새 지표를 제시할 것이다.

 

 

 

다산의 독서법

 

 

「다산의 독서전략」저자는 다산이 한 독서의 의미를 크게 3가지로 본다. ①수양 - 자신을 바로잡는 독서 ②교재 - 저자와의 만남. 책을 통한 교류 ③실용 - 세상에 빛을 주는 결과물을 내는 독서. 이 세가지가 그것이다.

 

이중 「다산의 독서전략」에서 보다 초점이 맞추어진 부분은 '실용'이다. 다산은 어떠한 독서법을 가지고 있었는가? 그 독서법이 저술에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가?

 

다산의 독서를 저자는 정독, 질서, 초서로 구분한다. 그리고 다산의 활동을 살피며 각 항목별 실천 방안을 정리해 놓았다. '아마도' 다산은 자신은 독서법을 이론화해 놓지는 않은 듯하다. 우리는 다만, 그가 남긴 산문, 편기, 책 속에서 그의 독서방법을 유추해 볼 따름이다.

 

저자 권영식은 자신의 해석을 바탕으로 다산의 독서법을 정리해 제시하고 있으나, 차후 독자가 직접 다산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그의 학문법을 직접 살펴봄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산은 어떠한 독서법을 가지고 있었는가? 간략하게 살펴보자.

 

 

1. 정독

 

다산은 마구잡이로 읽기만하는 독서는 독서로 인정하지 않았다. 읽은 후 반드시 생각해야 하며, 옳은지 의심하고, 질문하며, 그에 따른 결과물을 내 놓을 것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독이 필수적인 과정이다.

 

“발견하는“ 독서를 할 것을 강조한다. 독서하며, 자신이 가진 지식, 지혜를 총동원하여 글에 들어있지 않은 새로운 면을 보는 것이다. '행간 읽기'라고 저자는 표현한다. 지금 읽는 내용과 연관되는 모든 사항을 관련지어 사고하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근본을 찾아 읽는다.” 이것이 정독의 핵심이다. “자의와 문리를 파악하라.“고 다산은 말했다. 글자 하나의 명확한 의미를 알아, 문장의 명확한 의미를 해석하고, 이를 통해 글 전체의 의미를 정학하게 파악하라는 것이다.

 

알지 못하는 용어가 나올 경우 임의로 지레짐작하여 추론하지 말고, 관련된 문서를 모두 참조 하여 해당 용어가 어떤 식으로 쓰였는지 비교, 대조 함으로써 그 정확한 쓰임과 뜻을 알아 내는 방식의 논리적이고 철저한 독서를 할 것을 요구한다.

 

다산의 정독은 「선택적 책읽기」에서 고미야가 말하는 숙독과 일맥 상통한다. 이는 현대의 학자들이 수행하는 연구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되는 방식이다. 선현의 글을 믿고 그저 암기하는 학풍이 주를 이루던 시기에 주도적으로 과학적인 학문법을 터득해 수행한 다산의 학문에 대한 집요함이 새삼 놀랍다.

 

 

2. 질서(疾書)

 

쉽게 말해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 빠르게 메모하는 방법이다. 우선, 질서의 깊은 의미를 살펴보자.

 

질서에 병 질()자가 쓰였다. 은 질병이란 의미 외에도 진력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 질서는 온 힘을 다해 써라.’ 혹은 온 힘을 다하는 독서의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독서에 온 힘을 다 한다는 말은 단순히 성실하고 꾸준하게 읽는 것 이상을 가리킨다.

 

저자는 질서를 회의(懷疑)와 자득(自得)을 통해서 주견(主見)을 확립하는 독서법이라고 말한다. 읽는 내용에 의심을 품고, 직접 깨닫고, 자기만의 의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의심하라니? 글을 읽으면서 트집을 잡으란 말인가?

 

이는 선현의 견해를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얻음으로써 학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튼튼히 세우는데 목적을 두라는 의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읽기만 한다면 책에 담긴 저자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게 된다. 이는 올바른 독서가 아니다.

 

책의 내용과 주장에 매몰되지 말고, 스스로의 주관을 가지고 저자의 의견을 읽으며, 더 나은 방법은 없는가. 이것이 옳은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스스로 납득하는 독서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의견이 만들어지고, 깨달음이 생기게 된다.

 

그때 그 의견과 깨달음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질서의 참 된 의미라고 하겠다.

 

 

3. 초서(抄書)

 

책을 읽으며 유용한 부분을 발췌하는 독서법이다.

 

다산이 그토록 방대한 저술을 할 수 있게 만든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초서는 단순한 독서법이 아니다. 마음에 드는 문구를 베끼는 데 그치는 행위가 아니라. 애초에 저술을 염두에 둔 전략적 준비단계이다. 사방에 산재해 있는 정보를 관련되는 것에 따라 한데 묶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 절차는 이렇다. 우선 주제를 정하고 목차를 수립한다. 관련된 자료를 모두 모아 열람한다. 주제와 목차에 연관되는 내용을 발췌한다. 의미를 살펴 목차별로 연관되는 것끼리 엮어서 정리한다. 초서 중 주제와는 관련이 없지만 쓸만한 내용을 찾으면 따로 정리해둔다.

 

저술 준비가 아닌, 일반적인 독서 중에 초서를 한다면 책의 분야를 기록해 초서하고 분야별로 모아 정리해 두면 될 것이다.

 

사람에 따라 걸리는 시간은 다르겠지만, 이 방식을 사용하면 누구나 반드시 책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다산이 저술한 500여권의 책 중에도 흩어져 있는 정보를 의미별로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낸 것들이 많다.

 

 

 

다산의 발자취를 그리며

 

 

독서법에 관한 책이지만 읽고 나면 다산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 노년에 악화되는 건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저술에 몰두하는 놀라운 의지를 보여준 다산. 다방면의 주제를 능숙히 다뤄내는 그의 뛰어난 정신수준은 감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다산은 책상 앞의 차가운 학자가 아닌, 백성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학문의 근본이자 삶의 원동력으로 삼은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었다.

 

다산은 여유롭고 평온한 삶을 살지 못했다. 천주교와 연관되어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자신을 신임해 준 정조 사후에는 아무런 방책도 없이 정적의 공격 앞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그 결과 반평생을 유배지와 초야에 묻혀 지내야만 했다.

 

한 때는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최고 권력의 측근으로 일했지만, 순식간에 몰락하여 관직으로의 길이 막혀버린 다산. 요즘으로 비유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하다가 한순간 실각하여 모든 취직 길, 모든 기회의 문이 막혀버리고 평생을 공원에서 시간이나 보내야 되는 사람이 된 격이라 하면 조금이라도 비슷할까.

 

세상을 한탄하며 폐인과 같은 삶을 살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다산은 정성을 다해 책을 읽고, 사랑하는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책을 남기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 독서와 저술을 지속했다. 참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숭고함이다.

 

다산을 그저 독서가, 저술가, 영리한 학자 정도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버렸음에도 세상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며,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태워낸 헌신적인 박애주의자였다.

 

우리는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가진 것 없는 현실을 한탄하며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만 내고 있지는 않는가. 누군가 자신을 더 나은 곳에 데려다 주기를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은가. 행복을 핑계로 더 편하고 더 좋은 것을 찾느라 정작 자기 삶의 의미는 발견하지도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다산의 삶에 대한 생각이 흐트러진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독서법을 포함해서, 다산이 남긴 정신에 공감하고 자기 방식으로 수용해서 그가 살아낸 의미 있는 삶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본다. 왠지 다산이 남긴 글을 읽으며 그를 더 깊이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다산의 독서전략후기의 마무리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