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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산책

보성 여행기 - 제암산 자연휴양림, 율포해수욕장, 보성읍

 

 

 

 

 

 

아직 본격적인 휴가가 시작되기 전인 7월 중순 보성으로 여행을 떠났다. 보성에는 '제암산 자연휴양림'이라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꽤나 유명한 휴양지가 있다. 보성군에서 관리하는 곳으로, 산 속에 펜션과 콘도를 지어놓고 온라인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주말과 성수기에는 예약 시간이 시작되는 타이밍에 빠르게 예약 작업을 시도해야 예약이 가능할만큼 경쟁이 치열한 곳인데, 운좋게 휴가계획에 맞춰서 7월 중순 주말에 펜션을 예약할 수 있었다.

 

제암산 자연휴양림에 펜션이 처음 조성된게 아마 10여년 전이지 않나 싶다. 당시에는 콘도형 휴양관 1동과 통나무집 4채 가량이 전부였는데, 이게 인기가 좋았다. 사업성이 있다 판단되었는지, 지금은 콘도형 휴양관이 2동, 독채형 펜션 수십채가 지어졌다. 그리고 여전히 성업중이다. 좋은 시설, 사설 펜션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가격, 자연 경관, 산책 코스, 물놀이 시설, 녹차밭, 율포해수욕장 등의 인근 관광지 등의 여러가지 요소들의 시너지로 보인다.

 

우리 일행은 금요일 오전 마트에서 장을 보고, 체크인 시간인 14시에 맞춰 보성 제암산으로 출발했다. 주말에 비가 예보되어 있었지만, 아직 내리지 않았다. 다만, 구름 낀 흐린 하늘이 앞으로 날씨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상케 했다. 하지만 흐린 날씨가 여행 계획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우리 일행은 오히려 쨍한 햇볕보다 구름 낀 날씨가 활동하기에는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광주에서 보성까지는 도로가 잘 구축되어 있다. 대략 1시간 가량 달리면 제암산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과거, 도로가 정비되기 이전에는 1시간 반 내지 두시간이 걸리던 거리였다. 내게 여행의 전 과정에 있어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을 꼽으라면, 목적지로 향하는 길이라고 할 것이다. 목적지에서의 휴식과 경험도 즐겁지만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역시 그 곳을 향하는 길이다. 마치 주말을 향하는 금요일 저녁이 가장 기분 좋은 것 처럼.

 

제암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하여 관리사무소에서 체크인을 한다. 이곳은 쓰레기 봉투를 판매하고 있다. 펜션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고객들이 직접 쓰레기 봉투에 담아서 버려야 한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정책이었고, 솔직히 지금도 불만스러운 부분이다. 펜션 이용료에 청소비용도 포함되어있는 것 아닌가? 처음 방문했을 때는 관리인이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당연히 쓰레기봉투를 사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대한민국 어느 펜션이 손님에게 쓰레기봉투를 강매하는가? 나중에 알아보니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자연휴양림은 다들 쓰레기봉투를 별도로 판매하고 있었다.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조치인가 싶은데, 이용객이 이 사항에 대해 납득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뜬금없이 "쓰레기봉투 사가셔야 하는데요." 라고만 할게 아니고 말이다.

 

숙소의 장단점

 

우리 일행이 예약한 곳은 '영산홍 3호'다. '영산홍'이 지어진 곳은 제암산에 펜션형 건물이 처음으로 들어설 때 조성된 부지다. 그만큼 숲도 울창하고 위치도 가장 좋다. 계곡 바로 옆에 있어 물놀이 가기도 편하고, 동남향이지만 채광도 적절하다. 그 중에서도 영산홍 3호가 계곡과 가까운 쪽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위치가 가장 좋은 펜션이다. (숙소정보 링크)

 

 

영산홍3호

영산호3호 전경. 

줄지어 있는 3채의 펜션 중 가장 안쪽에 위치해있다. 펜션 바로 건너편에 계곡이 흐른다.

 

 

영산홍3호

 채광이 적절하다. 동남향이다. 아침에는 커튼 조절이 필요.

데크 앞에 나무가 우거져 그늘이 드리워진다. 캠핑용 의자가 있다면 펼쳐놓고 쉬기 좋다.

 

 

헌데 한가지 생각지 못한 점이 있었다. 영산홍 펜션은 지어진지 가장 오래된 만큼 시설이 노후되었을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적절한 유지보수가 되어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냥 노후된 그대로 였다. 방문은 껍질이 벗겨진 채 였고, 펜션 거실에 있는 소파는 쿠션이 푹 꺼진 폐품 상태였다. 특히 화장실의 수채구멍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악취가 뿜어져나왔다. 다소의 시설 노후야 주변 경관으로 상쇄된다지만, 이 악취는 숙소에 묵는 내내 일행을 괴롭혔다.

 

 

영산홍3호

낡아 뭉게진채 방치되고 있는 소파. 하지만 진짜 불편은 화장실 수채구멍에서 올라오는 악취였다.

 

 

관리소에서는 숙소의 이런 실태를 파악은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알면서 방치하고 있는 것인지,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예산 부족으로 피치못하게 보수작업을 보류하고 있는 것인지. 여튼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펜션을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하고 있다니 너무 실망스러웠다. 차후 제암산 자연휴양림을 재방문 할 일이 있다면 먼저 보수가 완료되었는지 확인을 해야겠다. 아니면 다른 펜션을 예약하거나 말이다.

 

1일차

 

율포해수욕장  

 

우리는 짐을 풀고 율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차로 20여분. 멀지 않은 곳이다.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닌 금요일인데다가 날이 흐린 탓인지, 굉장히 한산했다. 역시 휴양지는 어느정도 사람들이 북적여줘야 그 특유의 맛이 난다. 너무 한산한 해변을 보니 왠지 모르게 울적해졌다. 바닷가를 끼고 조성된 산책로를 걸으며 파도소리와 바다내음을 느꼈다. 흠.. 서정적인 감상이 드는게 이것도 나쁘지 않다.

 

율포해수욕장은 아담하다. 폭 60m에 길이는 1.2km라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작은 규모에 비해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편이다. 연계해서 관광할 수 있는 곳으로 보성차밭이 있고, 해수욕장에서 도보 이동이 가능한 곳에 해수사우나와 풀장, 다비치콘도가 있어서 가족단위 여행객이 놀다가기 좋은 곳이다. 다비치콘도에는 회사에서 단체 여행을 오는 경우도 많다. 이 날도 운송조합관련 단체에서 하계연수회를 와 있었다.

 

 

율포해수욕장

율포해수욕장. 성수기가 아닌 금요일이라 사람이 거의 없다. 흐린 날씨 탓도 있을 듯.

 

 

해변을 걷다보니 한 가족이 보였다. 부부가 두 딸을 데리고 여행을 온 모양이다. 이런 날씨에도 튜브까지 가져와서 딸들에게 물놀이를 시켜주고 있다. 바지를 걷고 물속에 들어가 딸들과 놀아주는 아빠와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기 좋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부모의 책임감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이런 날씨에 바다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을 텐데, 딸들을 위해 애쓰는 모습에서 아빠라는 이름의 무게가 느껴진다.

 

한길로 식당

 

어느덧 저녁식사 시간. 어플 중에 맛집을 검색해주는 어플이 있다. 나는 '다이닝코드'라는 어플을 사용하는데,  보성읍에 있는 '한길로식당'을 추천해줬다. 한정식 상차림이라는데 깔끔하고 담백하다는 평이다. 미리 전화해서 인당 12,000원짜리 상으로 예약을 하고 방문했다. 보성군청 앞에 위치한 식당인데, 굉장히 오래된 듯 간판이 허름했다. "간판보고 실망했지만 맛보고 만족했다."는 글을 미리 봐둔터라 동요하지 않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에는 세 분이 일하고 계셨다. 사장님 내외와 직원 한분, 그런데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하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설때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보성읍을 돌아보니 전체적으로 한산했다. 금요일 저녁의 특징인가 보다. 집이 광주인 공무원들은 모두 보성을 빠져나가고, 아직 주말 관광객이 유입되지 않아 마을이 텅 빈것 같다. 어딜가든 한산한게 좋기도 하면서 묘한 공허감도 든다. 

 

 

한길로식당

한길로 식당의 인당 12,000원짜리 상차림. 반찬을 정갈하게 담고자 한 노력이 엿보인다.

괜찮은지 아닌지, 판단은 개인의 몫.

 

 

식사는 평대로 깔끔하고 담백했다. 꼬막, 쭈꾸미, 생선(부서), 돼지불고기가 주메뉴로 나왔다. 특히 쭈꾸미가 굉장히 연하고 부드러워서 먹기 좋았다. 나는 오징어 같은 종류의 질기고 이에 끼는 음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의 쭈꾸미는 그런 거부감 없었다. 꼬막도 신선했다. 나는 꼬막을 양념맛으로 먹는다. 비리지 않게 잘 버무려진 양념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곳은 살짝 비렸다. 신선하다는 거겠지만 해산물을 그다지 즐기지않는 내 입맛에는 별로였다. 하지만 같이 간 일행은 모두 만족해했다.

 

그러나 12,000원짜리 상 치고는 감동이 약했다. 내가 기대가 높았던 탓일까? 음식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 정도의 상차림을 접할 수 있는 곳은 많다. 평범하다고 해야 할까. 지역 특산물이 올라왔기 때문에 그 맛을 본다는 것에 의미가 있긴하지만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하고 일부러 찾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식당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일상속에서 점심 백반이나 가볍게 저녁을 먹기 위해 찾기에는 훌륭한 식당이다.

 

2일차

 

보성 해안도로 드라이브

 

 

보성해안도로

보성 해안도로의 범위. 지도의 좌측에 제암산 자연휴양림, 중앙에 녹차밭이 보인다. 

 

 

치열했던? 하루 일정을 마치고 여행 2일차가 되었다. 새벽부터 내린 비가 아침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투둑투두둑. 내리는 빗방울 소리에 상념이 묻어흐른다. 창문과 처마를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옛 추억에 잠겨 누워있다. 뭐 이게 흔히 말하는 힐링이지 싶다. 오전 9시경 드라이브를 하러 나가기로 한다. 아침에 잠깐 검색해보니 '득량역'에 '추억의 거리'를 조성해놓았다고 하는데 그곳이나 보러가자하고 길을 나섰다.

 

차창을 때리는 빗소리와 앞유리를 닦는 와이퍼 소리가 고즈넉한 시골길을 달리는 차내를 채웠다. 우리 일행은 전날 늦게 잠든 탓에 몽롱한 상태로 조용히 빗소리를 들으며 간간히 하루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덧 도착한 득량역, 역시나 비가 온 탓에 사람이 없다. 음. 추억의 거리라... 7, 80년대의 건물과 추억을 되살릴 수 있도록 조성된 곳이었다. 거리의 길이는 100여미터 정도 될까?

 

날씨가 좋다면 산책겸 걸으면서 추억 삼아 사진을 찍을만 한 장소였다. 하지만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는 터라 차에서 내리기 꺼려졌다. 손님이 없는 탓인지 건물들의 문도 다 잠겨있었다. 득량역 추억의거리는 차창 밖으로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추억의거리를 지나 계속 차를 몰아 '득량만 방조제'로 향했다. 특별한 목적 없이 이왕 온거 바다나 보고 가자는 생각이었다.

 

방조제에 도착했을 때도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지만, 우산을 쓰고 방조제 위에 조성된 산책로를 걸었다. 바다에 새들이 내려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갈매기는 아니고 무슨 새였을까. 학처럼 목과 다리가 길어 고고해보이는 새였는데, 비오는 날에 웬 사람이 걸어다니니 긴장한 채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방조제를 기준으로 이쪽은 담수이고 저쪽은 염수다. 그러다보니 생태계도 방조제를 기준으로 확연히 달라진다. 인간이 만든 인위적임과 자연이 묘하게 어우러진 느낌이다.

 

 

보성 해안도로

  요즘 현대미술에서 단색화가 유행이라던데, 회색의 하늘과 바다 풍경에서 살짝 단색화의 느낌이 난다. 

 

 

차로 지나온 길을 되돌아 가지 않고 해안도로를 따라 율포를 향하기로 했다. 방조제에서 율포해수욕장까지 대량 20km 가량 바다를 끼고 돌며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었다. 쾌청한 날에 찾는다면 꽤나 근사한 해안도로 드라이브가 될 것 같다. 물론 흐린 날은 그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다. 잔잔한 음악과 차창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만드는 분위기, 회색톤의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서정적인 분위기에 푹 젖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중간에 '비봉공룡알화석지'가 있으니 자녀를 동반한 여행객이라면 경유지로 삼아도 좋겠다.

 

 

보성 해안도로

  보성 해안도로를 달리다 만난 거대 바위. 좌측의 주택과 비교하면 크기가 짐작된다. 

뭔가 전설이 있는 바위일 것 같아 표지판이 있나 찾아봤지만 공식 명칭은 없는 듯했다. 

 

 

제암산 자연휴양림 일주

 

해가 넘어간 오후 5시 경. 제암산 자연휴양림 일주에 나섰다. 제암산 자연휴양림은 부지 내에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트레킹 코스가 조성되어있다. 휠체어 이동이 가능하도록 진출입로가 만들어져 있고, 코스 전체의 경사도가 완만하다. 총길이 약 6km 가량으로, 편백나무 숲 등을 관통하도록 코스가 꾸며져 있기에 산림욕을 즐기기에 좋다. 본격적인 등산은 부담스러울 때, 산책하는 정도의 기분으로 숲속의 상쾌함을 느낄 수 있는 코스다.

 

 

 

 

우리 일행은 약간 빠른 걸음으로 코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목표는 코스 전체 일주.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될 것이었다. 비에 젖은 흙내음, 풀내음이 정신을 상쾌하게 했다. 해질녘이 되자 어디선가 들려오는 뻐꾸기 우는 소리가 숲의 고요한 정막에 파문을 일게 했다. 숲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어지럽히지 않기 위해 우리 일행은 나즈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이어갔다.

 

 

  밑둥이 잘려나간 나무에 새 순이 돋았다.

 

 

트레킹 코스 중간에 등산로로 이어지는 진출로가 있었다. 목표는 트레킹 코스 일주이고 등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지만, 가까운 목적지라면 다녀올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나무와 바위.' 뭔가 동양화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만드는 이름이었다. 거리도 700m로 가깝고. 해서 잠시 들렀다 오기로 한다. 헌데, 산속 700m는 평지에서의 700m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암산 자연휴양림

 

 

빠른 걸음으로 한참을 걸었는데도 목적지는 보이지 않고, 인적이 희미해져갔다. 얼굴에 휘감기는 거미줄, 등산로를 가로막으며 자라있는 나무줄기, 발 딛는 곳이 어디인지 분간되지 않는 바위길. 느낌상 700m는 한참 전에 지난 것 같은데 갈수록 숲은 우거지기만 했다. 설상가상 해질녘 숲속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애당초 등산준비가 완벽했다면 큰 걱정없을 길이지만, 반바지, 반팔, 운동화에 달랑 카메라만 들고 있던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돌아갈까? 아니 거의 다왔을 텐데 여태 온게 아깝잖아.' 머릿속은 걱정과 고민이 반복됐지만 다리는 무엇에 홀린 것처럼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고 호흡이 가빠왔다.

 

그렇게 허겁지겁 걷던 중 갑자기 바람이 훅 얼굴을 때리며 주변이 확 하고 밝아졌다. '소나무와 바위'에 도작한 것이다. (도착한 것이었다고 믿고 있다.) 전면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툭터진 공간. 산 속에 갇혀 있던 등산로가 절벽에 접하면서 산 밖의 풍경과 만나게 되는 장소였다. 절벽을 향해 뻗어있는 한그루의 소나무와 그 아래 놓여진 소박한 바위가 이곳이 '소나무와 바위' 임을 짐작하게 했다. 어두운 산 길을 걷다가 밝은 바깥세상(?)과 만나니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안도감 속에서 한동안 풍경 감상에 빠져들었다.

 

 

'소나무와 바위' 에서 바라 본 풍경. 

포토샵의 파노라마 기능에 오류가 나서 사진을 수작업으로 기워붙인 터라 모자이크 느낌이 난다.

 

 

하지만 날이 어두워지고 있는 만큼 산 길에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목표 지점에 도착했으니 서둘러서 왔던길을 되돌아 나간다. 그런데 놀랍다. 온길을 되돌아 가는 것은 참 짧게 느껴진다. 한번 와본 길이고 목표점이 어디인지 알고 있으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다양한 형태로 하게 된다. 경험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익숙함으로 변화시킨다.

 

 

 트레킹 코스의 정상. 해피 500. 

맞은편에 제암산 최고봉인 '임금바위'가 있다.

 

 

다시 트레킹 코스로 복귀하여 일주를 이어간다. 500고지에 마련된 전망대에 도착했다. 트레킹 코스 중 가장 높은 곳으로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날이 맑으면 맞은편에 '임금바위'가 보인다. 이 날은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던 터라 산 정상이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우리 일행은 각자 마음에 드는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트레킹의 마무리를 위해 하산을 시작했다.

 

 

 집마다 불을 밝히고 가족들이 모여 있다.

아이를 씻기고, 저녁상을 차리고, 대화를 한다. 이야기 소리 웃음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움이 가득 묻어나는 풍경이다.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니 어둑어둑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저마다 자리를 잡고 있는 펜션의 외부등에 불이 들어온다. 낮시간 동안 외출을 다녀온 가족들이 펜션에 돌아와 불을 밝히고 있다. 간간히 새어나오는 대화 소리가 고즈넉한 산 속의 여름 공기를 타고 하늘로 흩어진다. 편안함과 정겨움이 묻어나는 분위기에 절로 마음이 아늑해진다. 이렇게 여름의 휴가지 저녁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나는 참 좋다.

 

여행을 마치며

 

3일차이자 여행의 마지막날. 전날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쏟아지는 뜨거운 햇볕. 우리 일행은 숙소 옆의 계곡에 자리를 잡아 오전을 보내고 체크 아웃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성 차밭을 경유하기 위해 점심 전에 휴양림을 나왔다. 휴가기간 내내 비와 함께한 여행이었다. 활동에 제약은 있었지만 갑절로 시원했고, 비에 젖은 숲이 뿜어내는 활기찬 기운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것은 빗소리와 흐린 풍경이 만들어낸 서정적인 분위기. 그 속에서 일행들과 나눈 기탄없는 대화들. 조용하고 잔잔한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너무나도 좋았던 정신적인 힐링의 시간이었다. 모든 여행은 추억이 된다. 이번 여행 역시 그럴테지. 여행을 시작하며 목적지로 향할 때 기대 가득한 들뜬 마음이었다면 귀가하는 길에는 기분좋은 아쉬움 가득한 여운이 마음 한가득 자리잡았다. 이제 이 여운을 에너지로 바꾸어 일상을 살아내는 힘으로 사용해야한다. 일상을 벗어난 여행의 감사함은 열심히 살아내는 일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니까.

 

 

 휴양림 내에 흐르는 계곡.

계단식으로 물을 가두어 만든 어린이 수영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