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증상
온도게이지가 최고로 치솟았다. 일찍 발견하기를 천만다행이었다. 몇 년 전에도 같은 증상으로 시동이 꺼진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부동액이 엔진으로 들어가서 전부 연소되버린 탓에 엔진이 과열되었다. 이를 모르고 계속 주행한 결과 실린더헤드까지 변형이 생겨 전체 수리비가 60만원 가량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차를 갓길에 대놓고 잠깐 서있던 중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차 옆을 지나가다가 허리를 숙여 차 밑을 자꾸 쳐다보시는 게 아닌가? 나는 이분이 왜이러시나 하고 있는데 “차 밑에 기름새요.” 하셨다. 헐? 내려서 보니 차 주변에 붉은 기운이 도는 액체가 흥건하고 차 밑에서 뚝뚝 액체가 떨어지고 있었다.
액체가 붉은 색이길래 미션오일이 새는 줄 알고 기겁했다. 침착해지려 노력하면서 잠시 고민을 했다. 견인해야 되나? 하지만 시동은 걸리고, 운행은 되고, 내가 다니는 카센터는 4km 거리에 있기 때문에 용감하게 차를 몰고 카센터로 향했다. 계기판을 유심히 살피면서... 그러던 중 온도게이지가 최고로 치솟았다. 안되겠구나 싶어 바로 차를 근처 빈공간에 세우고 견인 서비스를 요청했다. 그냥 처음부터 견인할 걸 그랬다. 자동차 보험 서비스 횟수가 남아 있다면, 견인서비스는 10km 까지 무료이고, 이후 1km 당 2천원이 추가된다. (삼성화재 기준)
견인차 조수석에 앉아서 견인기사님과 먹고사는 일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니 '상무현대자동차공업사'에 도착했다. 정비기사님이 이리저리 보시더니 어딘가 터져서 부동액이 새고 있다고 한다. 색깔이 붉었던 것은 부동액에 녹이 발생해서 오염이 심한 탓이라고 한다. 녹이 부동액 누수의 원인이었다. 이렇게 될 때까지 몰랐다니 내가 너무 무심했다.
고장 이유
정확한 고장 부위를 파악하기 위해 차를 맡겼다. 다음날 정비기사님의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워터펌프 고장으로 보인다고 했다가 잠시 뒤 다시 전화가 와서는 고장 부위가 워터펌프 아닌 '물뽕' 이라고 확신 하신다. 물뽕 부식으로 부동액이 누수되었고, 이로 인해 엔진 냉각이 이뤄지지 않아 엔진이 과열된 것이다.
물뽕 이란?
정비기사님들은 현장에서 쓰는 용어로 물뽕이라고 하는데, 관습적으로 물뽕이란 용어를 사용해 온 기사님들은 정확한 명칭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물뽕이라고 검색해봐도 마약에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자동차 물뽕으로 검색해도 마찬가지. 역시 이럴 때는 구글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다. 구글에서 '자동차 물뽕'을 검색해보면 동파방지캡이라는 설명을 볼 수 있다. 냉각수안전핀, 동파방지안전핀도 나온다. 정식 명칭은 익스팬션플러그(Expansion plug) 또는 실링캡(Sealing Cap)이다.
▲ 실링캡의 형태 (출처 : 이미지 내 기재)
▲ 실링캡 교체 과정 (출처 : 구글 검색)
카센터에서 사용하는 용어들 중에는 처음 듣는 단어들이 많다. 은어나 일본식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부품의 이름만 듣고는 그 부품이 무슨 역할을 하는 건지 어디에 붙어있는 건지 알기 힘들다. '그게 뭐죠?' 하고 물어보면 귀찮다는 듯,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표정과 말투로 투박하게 설명해주는 기사님들이 많다.
기사님들도 경험적으로 수리는 하지만, 설명을 해 줄만큼의 이론적 지식이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그냥 알아듣는 듯한 표정으로 들어 뒀다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곤 한다. 하지만 내가 방문한 상무현대자동차공업사의 정비기사님은 물뽕의 역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 너무 자세하게 설명해주신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는 내용인데 중간에 말을 끊을 수도 없고...;
실링캡(물뽕)이 하는 역할은 그렇다. 부동액은 엔진와 라디에이터(방열기)를 순환하며 엔진의 열을 식힌다. 하지만 겨울철에 장시간 주행을 하지 않을 경우 부동액이 얼 수 있다. 그러면 엔진 내부에 있던 부동액이 팽창하면서 엔진 블럭에 균열이나 변형을 유발하게 된다. 이를 방지 하기 위해 엔진 블럭 주변에 실링캡이 배치되어있다. 부동액이 팽창하면 엔진 블럭보다 강도가 약한 실링캡이 먼저 이탈되며 엔진 블럭을 동파로부터 보호한다. 하지만 강도가 약한 탓에 실링캡의 부식이나 노후가 원인이 되어 부동액(냉각수) 누수가 발생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수리 과정
원인은 밝혀졌고, 이제 무엇을 어떻게 수리할 것인지, 비용은 얼마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기사님은 실링캡(물뽕) 교체와 녹이 발생한 부동액 순환로(냉각라인) 세척 작업을 하자고 하셨다. 비용은 36만원! 부동액 세척 및 교환 비용이 8만원이라고 하셨으니, 실링캡 교체 비용이 28만원인 셈이다.
▲ 고장난 실링캡의 위치사진을 기사님께서 보내주셨다.
실링캡의 가격은 비싸지 않다. 개당 5천원정도, 비싸봐야 만원이 넘지 않는다. 하지만 고장난 실링캡의 위치에 따라, 작업 난이도에 따라, 작업자에 따라 공임이 천차 만별이다. 본넷을 열고 바로 교체할 수 있는 부위의 경우는 저렴하고, 엔진을 내려야 하는 부위의 경우는 당연히 비싸다.
그런데 내 차의 경우에는 엔진을 내릴 필요 없이 본넷을 열고 주변 부품을 탈거 후 그대로 작업할 수 있는 부위였다. 교체할 실링캡의 갯수도 단 1개. 헌데 비용이 28만원이라니... 상식적으로 생각 할 때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임은 작업 시간과 난이도에 비례하는 것인데, 작업 공간이 협소하다 해도 눈에 바로 보이는 부위의 수리비가 너무 비싼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상무현대자동차공업사'는 그동안 내가 단골로 이용했고 믿고 맡겨 온 곳이기에 더 이상 흥정하지 않고 그냥 수리를 부탁드렸다. 내가 알지 못하는 기술적인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믿기로 한다. 나는 인간관계 포함 모든 상황에서 의심스러우면 맡기지 않고, 맡긴 후에는 의심하지 않는다. 나중에 믿음이 배신 당했을 경우에만 그에 적합한 조치를 한다. 뭐.. 사람을 선별해서 일을 맡기고 일이 완료되기까지는 쫑알쫑알거리지 않는다는 소리다.
카센터 사장님이 겉벨트 3종을 같이 교환하고 3만원을 에누리 해주기로 하셨다. 해서 총 수리 비용은 33만원이 되었다. (실링캡 1개 교체, 부동액 세척 및 교환, 겉벨트 3종 교체) 아... 33만원 이면 고민하던 모니터를 구입할 수 있는 돈인데, 이렇게 계획에 없던 큰 돈이 지출되고 나면 허무함이 밀려오며 철학자가 되곤 한다.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수리 후
점심 전에 실링캡과 겉벨트 교체가 끝났다고 연락이 왔다. 이 후 냉각라인(부동액 순환로) 세척 작업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하시는데.. 엔진룸에 붙어있는 머플러 흡기구가 고장나 소음이 크다고 한다. 서비스로 공임없이 부품값만 받고 교체 해주신다고 하는데 부품값이 15만원이란다. 허허... 그냥 됐다고 말씀드렸다. 돈 쓸 곳이 한 두곳이 아닌데.. 차는 일단 굴러가기만 하면 되니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에 있는 건이다. 서비스로는 타이어 펑크나 좀 떼워주시라고 부탁드렸다.
수리가 끝난 차를 찾아 운행을 해보니 부동액 누수 관련된 고장은 해결되었다. 부동액도 깨끗한 초록색이 되었다. 하지만 녹이 발생해서 물뽕이 부식 된 경우라면 차후에 다른 물뽕에서 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물뽕 교체 작업을 할 때는 한번에 전체를 다 갈거나, 적어도 엔진을 내리지 않고 교체 할 수 있는 부분은 다 교체를 한다. (보통 3~4개 정도) 하지만 내 차는 직접적인 문제가 발생한 물뽕 1개만 교체했기 때문에 언제 또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는 다소 불안한 상태다. 하지만 어쨌든 냉각라인을 세척하고 부동액을 교환한 덕인지 뭔가 차의 내적인(?) 움직임이 좀 부드러워진 것 같다.
이번 건과 같은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역시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차량 점검이 필수다. 중고 차량을 구입할 때 부동액 상태 점검만 해봐도 절반은 성공이라고 한다. 그만큼 부동액 관리의 청결 상태는 차량의 수명과 컨디션에 큰 영향을 끼친다. 초보 오너 일지라도 엔진오일은 정기적으로 점검하지만, 부동액을 정기적으로 점검하지 않는 오너는 의외로 많은 것 같다. (나 포함..) 엔진오일을 교환 할 때 습관적으로 부동액 상태도 같이 봐달라고 요청하는게 좋겠다. 부동액을 자가 점검 할 경우에는 보조통의 수위와 부동액의 맑은 상태를 보면 된다. (부동액의 색깔은 대개 초록색이지만 다른 색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부동액은 2년, 4만km 마다 교환해줄 것이 권장(어디까지나 권장)되고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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